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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괄식 사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사람들은 결론만 얘기하길 원한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불안해서 그런 거다.  결론을 내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론도 무의미 해지기 때문이다.  크게 그려라.  크게 보라.  크게 크게 나아가라.  단기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시간을 길게 볼 수록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쫓기는 삶을 살래?

내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열심히 살게 만든다.  그 미묘한 신호를 알아차리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파악하라.  뭔가 불안하고 찝찝하다면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서다.  스스로 움직여야 쫓기지 않는다.  당할까봐 불안한 것보다는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라.  모든 것을 날카롭게 바라보라.  넌 파악할 수 있다. 넌 이겨낼 수 있다. 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볼 수 있다. 

결국 내 존재로 사는 것

상식적으로 해결되는 일이 있고  비상식적으로 해결되는 일이 있다.  남들이랑 똑같으면 날 쓸 이유가 없다.  내 존재로 일하는 것이다.  내 방식대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것이다.  정량적, 정성적인 평가를 떠나서  그냥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아지경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 뭐하시노, 대학이 왜 그래요?

면접을 보는데 아버지 뭐하시냐 묻는다.   대학이 사이버대학인데 왜 그러냐 묻는다.   가족력 학력 이제 남은 질문은 돈에 대한 질문이다.  돈 얼마 있는지 묻는 면접관은 아직 없었다.  역시 세상은 평가를 잘한다. 마음껏 해라.  난 쓰임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도울 것이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버리면 편하다. 난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지 않다.  오로지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만족을 위하여 살아갈 것이다. 

불안한 사람의 특징

불안이 심한 사람은 남을 볼 여유가 없다.  불안이 심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사랑을 줘도 사랑인지 모른다. 끝까지 자기 얘기만 한다. ​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온갖 것들을 시도한다.  조금도 견뎌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모 연예인이 이혼을 하고 신난다는 글을 올렸다. 이것도 일종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자기최면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죽을 것 같아 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남자가 불쌍했다. 애초에 누군가를 구원할 사람은 없다. 나로 인해 상대가 치유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지금이라도 구원자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혼자가 되어 회복하는 것이 그 남자에게 좋을 것이다. 오히려 신나해야 할 사람은 그 남자다. 

고장난 정신

 하루죙일 앉아서 숫자를 들여다 보니 정신이 마비되고 있다. 이성을 많이 쓰자 정신은 감성을 되찾으라 명령한다. 재무제표, EPS, 이익, 자본, 손익 이런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내가 얼마나 외롭고 연약한 존재인지 생각해본다. 결국 혼자다. 나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원래 혼자였다. 원래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 존재다. 그저 작은 의미 하나를 조심스레 세워서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뿐이다. 이성으로 감정을 마비시키고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낸다. 과거의 감정적인 내 모습이 점점 희미해진다. 혼자 욕을 해본다. 욕은 감정을 불러온다. 시발 것들. 약간 후련한데 어색하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이런 곳에 보내신 걸까? 우습다. 돈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고 있다. 주식에 대해서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고 있다. 펀드매니저인 내가 웃기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든다. 돈이면 다 되는 건가? 빌어먹을 돈은 힘이 너무 세다. 길들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돈을 버는 것의 목적은 하나다.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내 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나도.  얼마나, 언제까지 고난의 길을 걸을지 모르겠다. 각오 같은 것은 없다. 그냥 걸어가 보려고 한다. 모든 것은 관찰 대상이고, 나는 적응할 것이다. 내 최대 장점은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이다. 물론 정말 못 살 것 같은 환경은 더러워서 피한다. 

버틸 이유가 있는가?

 있다. 가족을 위해서다. 

불안하지말자

 불안할 이유는 없다. 미래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결과를 보고 불안해도 된다. 아무도 모르니까 쫄지말자. 그리고... 망하면 어떤가? 실제로 정말 망하는 경우는 잘 없다. 망해도 다시 하면 된다. 

무의미함이 제일 무섭다

 의미를 잃은 사람은 미래도 희망도 없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의미를 만들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망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허무도 무서운 것이다. 가끔은 절망과 허무가 찾아와서 앞길을 지우개로 지우는 경우가 있다. 다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스스로 만드는 의미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의미는 중요한 사람과 엮여 있다. 그 사람을 위해 참아내고 견뎌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의미란 결국 사람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어머니 뿐이다. 

정색하면서 말하기

 웃어줄 필요는 없다. 선을 넘는 경우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표정이 진지하지 않으면 장난인줄 안다. 참을 인은 세 번만 하는 것이다. 그 이상 참아주면 호구된다. 지금까지 두 번의 기회를 줬다. 한 번은 나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했으며, 두 번은 투운사 시험에서 그런 것도 안 배웠냐고 핀잔을 줬다. 이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다. 큰 이상을 위해 참아주는 것이다. 만약 이것보다 더 선을 넘어 온다면 경고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단호하고 엄정한 표현으로 내 영토를 지킬 것이다. 내 분노는 생각보다 강하다. 살면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고, 많이 순화되었다. 순화되었다고 해서 날카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리한 표현은 상대를 밀쳐낼 것이다. 나는 믿는다. 내가 적절히 표현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