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죙일 앉아서 숫자를 들여다 보니 정신이 마비되고 있다. 이성을 많이 쓰자 정신은 감성을 되찾으라 명령한다. 재무제표, EPS, 이익, 자본, 손익 이런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내가 얼마나 외롭고 연약한 존재인지 생각해본다. 결국 혼자다. 나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원래 혼자였다. 원래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 존재다. 그저 작은 의미 하나를 조심스레 세워서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뿐이다. 이성으로 감정을 마비시키고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낸다. 과거의 감정적인 내 모습이 점점 희미해진다. 혼자 욕을 해본다. 욕은 감정을 불러온다. 시발 것들. 약간 후련한데 어색하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이런 곳에 보내신 걸까? 우습다. 돈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고 있다. 주식에 대해서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고 있다. 펀드매니저인 내가 웃기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든다. 돈이면 다 되는 건가? 빌어먹을 돈은 힘이 너무 세다. 길들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돈을 버는 것의 목적은 하나다.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내 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나도. 얼마나, 언제까지 고난의 길을 걸을지 모르겠다. 각오 같은 것은 없다. 그냥 걸어가 보려고 한다. 모든 것은 관찰 대상이고, 나는 적응할 것이다. 내 최대 장점은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이다. 물론 정말 못 살 것 같은 환경은 더러워서 피한다.